안희연 / 12월
안희연 / 12월 겨울은 빈혈의 시간 피주머니를 가득 매단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만 생각나 입김 한 번에 허물어지는 사람들이 이곳엔 너무너무 많다 너무라고 말하지 않고 너무너무라고 말하는 것 그래도 겨울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겠지 그래서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강도를 높여가는 겨울의 질문 앞에서 나는 나날이 창백해진다 이렇게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도 괜찮을 걸까 기도가 기도를 밟고 오르는 세상에서 헐렁헐렁 산책하는 일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축축한 영혼을 나라고 부르는 일 다행히 겨울은 불을 피우기 좋은 계절이다 나에겐 태울 것이 아주 많고 재가 될 때까지 들여다볼 것이 있어서 좋다 "잘하고 못하는 게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 불 앞에서 다 식은 진..
202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