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 12월

2020. 7. 5. 15:47同僚愛/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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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12월

겨울은 빈혈의 시간

피주머니를 가득 매단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만 생각나

입김 한 번에 허물어지는 사람들이

이곳엔 너무너무 많다

너무라고 말하지 않고

너무너무라고 말하는 것

그래도 겨울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겠지

그래서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강도를 높여가는 겨울의 질문 앞에서

나는 나날이 창백해진다

이렇게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도 괜찮을 걸까

기도가 기도를 밟고 오르는 세상에서

헐렁헐렁 산책하는 일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축축한 영혼을 나라고 부르는 일

다행히 겨울은 불을 피우기 좋은 계절이다

나에겐 태울 것이 아주 많고

재가 될 때까지 들여다볼 것이 있어서 좋다

"잘하고 못하는 게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

불 앞에서 다 식은 진심을 꿀꺽 삼킬 때

피는 반짝이는 것이다

혼자 왔다 혼자 떠나는 슬픔이 있어 오늘은 거룩한 밤이 된다

피주머니를 가득 매단 크리스마스트리가 그것을 말해준다

 

 

 

안희연 / 12월

(안희연,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현대문학, 2019)


https://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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