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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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1978년부터 42년간 550권을 출간한 '문지 시인선'에서 지난 12월 '디자인 페스티벌'을 진행했고, 내가 좋아하는 '한강' 시인(사실 그녀는 소설가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여덟 권의 소설 단행본을 출간한 후에야 첫 시집이 나왔기 때문)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위 시집을 포함하여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 '이제니'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등 총 4권에 대한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문지사는 타이포그래피와 종이의 뚜렷한 물성을 총체적으로 결합해냈다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니' 시인의 책이 가장 이색적이었다.내부 디자인의 경우 기존 시집의 출판 당시 모습을 빌려 와 약간의 변형을 취했는..
2021.01.23 -
한강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
2021.01.10 -
한강 / 거울 저편의 겨울 5
한강 / 거울 저편의 겨울 5 시계를 다시 맞추지 않아도 된다, 시차는 열두 시간 아침 여덟 시 덜덜덜 가방을 끌고 입원 가방도 퇴원 가방도 아닌 가방을 끌고 핏자국 없이 흉터도 없이 덜컥거리며 저녁의 뒷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강 / 거울 저편의 겨울 5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4 -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6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6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6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