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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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리 「궐련」
머리는 바닥에 빠르게 떨어지기 위해 가장 무겁게 만들어진다 입술 자국이 묻은 문장은 금세 재가 되어 가라앉는다 그릇이 다 채워져 뚜껑을 덮어 버리면 아직이라는 부사를 자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일 것이다 볼링공이 무표정으로 레인을 구르다가 핀을 쓰러뜨린다 아홉 핀이 뒤로 넘어가고 남은 한 개의 핀을 향해 구르는 공 스페어 실패 스핀도 없이 도랑으로 빠지지 다 같이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 숨을 나눠 마시다 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뒤섞인 냄새가 온몸을 더듬는다 테이블에 칸막이를 설치한 식당에 앉아 얼굴을 묻고 국수를 들이켠다 밥을 먹을 때 숙이는 등의 기울기를 따라 그림자도 휘어진다 두 갑 정도 태우면 채울 수 있을 형상이다 썩어 문드러졌을 속이지만 같은 색깔은 같은 색깔로 지울 수 있다..
2021.02.10 -
신해욱 / 色
신해욱 / 色 나는 과도한 색깔에 시달린다 내가 나빴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져서 색깔을 훔치곤 했다 천연의 것들 인공의 것들 미안 너의 그림자도 건드렸다 심지어는 물에게까지 그랬다 색깔들이 불규칙하게 차올라서 나는 쉽게 무릎이 꺾인다 나는 눈동자가 커다랗고 내가 너무 무거운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것들은 정말 많고 네가 있고 나는 녹이 슬고 나는 호흡 곤란 오래오래 그럴 것이다 신해욱 / 色 (신해욱, 생물성, 문학과지성사, 200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