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리 「궐련」

2021. 2. 10. 22:18同僚愛/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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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바닥에 빠르게 떨어지기 위해 가장 무겁게 만들어진다

입술 자국이 묻은 문장은 금세 재가 되어 가라앉는다 그릇이 다 채워져 뚜껑을 덮어 버리면 아직이라는 부사를 자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일 것이다

볼링공이 무표정으로 레인을 구르다가 핀을 쓰러뜨린다 아홉 핀이 뒤로 넘어가고 남은 한 개의 핀을 향해 구르는 공 스페어 실패 스핀도 없이 도랑으로 빠지지

다 같이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 숨을 나눠 마시다 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뒤섞인 냄새가 온몸을 더듬는다

테이블에 칸막이를 설치한 식당에 앉아 얼굴을 묻고 국수를 들이켠다 밥을 먹을 때 숙이는 등의 기울기를 따라 그림자도 휘어진다 두 갑 정도 태우면 채울 수 있을 형상이다

썩어 문드러졌을 속이지만

같은 색깔은 같은 색깔로 지울 수 있다

아파트에서 추락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연기를 뱉는다 환각이었다고 한다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은 이 세계에 없다

어떤 공기는 이목구비가 망가진 호흡이 되어 간다

정말 다 괜찮아질까?

줄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미간을 좁히며 말한다

놀이터는 금연 구역이다

꽁초가 모래성 맨 위에 박혀 있다

 

 

 

from Lenka Sluneckova

 

 

 


 

 

 

이기리,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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