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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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지 「언더독」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
2021.02.17 -
최백규 / 낙원
최백규 / 낙원 그해 봄은 성한 곳 없이 열을 앓았다 살을 맞대어 서로에게 병을 안겨주던 시절이었다 눈더미처럼 누워 화관을 엮었다 불 지르고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창을 열어두고 살았다 보낸 적도 없는데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있어서 문턱을 쓸듯이 늦은 저녁을 차리며 끓어 넘치지 않도록 들여다보는 사이 과일은 무르고 이마가 식지 않았다 최백규 / 낙원 (창작동인 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아침달,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