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림 「오로라 털모자」
내 기억은 온전치 못한 것이기에 편지를 써두어요 겨울을 보냈어요 드레스를 입은 환자가 들판을 달려 엊그제 오해 때문에 떠나보냈던 남자 뒤를 쫓기 위해 고무오리인형을 타고 암흑뿐인 호수를 건너 조금씩 더 슬퍼져 가는 정신병자처럼 입가에 사탕부스러기를 붙이고 그것들이 떨어질 때까지 겨울 떡갈나무에도 입술이 생기길 바랐어요 잘생긴 귀가 보이는 기다랗고 멋진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얼어붙은 땅 따위 걷어차고 침대 속에 오래 묻어 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글과 익은 열매와 멍든 과일주 와 한 가지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거기에 흩어진 주근깨 같은 당신을 보았어요 피부를 뚫고 나온 흙투성이 발톱 쐐기풀 망태기를 뒤집어쓰고 죽음과 나누던 이야기를 창밖으로 다른 나라 말로 비명을 지르는 눈사람 북유럽 동화를 읽어 ..
20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