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4. 21:01ㆍ同僚愛/주하림
내 기억은 온전치 못한 것이기에 편지를 써두어요
겨울을 보냈어요 드레스를 입은 환자가 들판을 달려
엊그제 오해 때문에 떠나보냈던 남자 뒤를 쫓기 위해
고무오리인형을 타고 암흑뿐인 호수를 건너
조금씩 더 슬퍼져 가는 정신병자처럼
입가에 사탕부스러기를 붙이고 그것들이 떨어질 때까지
겨울 떡갈나무에도 입술이 생기길 바랐어요 잘생긴 귀가 보이는
기다랗고 멋진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얼어붙은 땅 따위 걷어차고
침대 속에 오래 묻어 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글과 익은 열매와 멍든 과일주
와 한 가지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거기에 흩어진 주근깨 같은
당신을 보았어요
피부를 뚫고 나온 흙투성이 발톱
쐐기풀 망태기를 뒤집어쓰고 죽음과 나누던 이야기를
창밖으로 다른 나라 말로 비명을 지르는 눈사람
북유럽 동화를 읽어 주던 당신의 털모자와
한쪽 팔을 잘라 날개를 갖게 된다면
떡갈나무 몸통에 어제 우리를 쫓던 사냥꾼 몸이 박혀 있다
겨울 오로라를 올려다보는 사람이 된다면
그곳에도 황량한 나무 한 그루까지 빨아들이는
악랄한 왕이 있겠지
아직 자신의 꿈틀거리는 탐욕이나
까닭을 모르는 슬픔
무너질 듯한 절망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녀 소년들을 앉히고
서서히 무릎을 흔들겠지
드레스를 벗은 환자는 외친다
늙지 않는 여왕이 되고 싶다
끔찍해
놀라지 않는 여왕이 되고 싶다
숲에서 길을 잃으면 우리가 벤, 떡갈나무 집으로 향하면 되지
붉고 싱싱한 독버섯이 핀 동화집을 뜯어먹으며
구름들 콜라비 파라솔 발음이 새는 단잠 고문용 철마스크
정신을 잃더라도 제일 어두운 이름 중에 내 이름이 있어
허연 입김을 씩씩 뿜는 개를 만져 주며
돌다리에서 만나
철계단에서 만나
우리는 다시 꿈에서도 붙잡지 못할 사람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글과 익은 열매와 멍든 과일주와 한 가지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거기에 흩어진 주근깨 같은
침대에 묻어 둔 이야기
침대가 되었듯
침대의 먼지들이 침대가 되었듯
2013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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