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문장웹진7월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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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파피루아」
우리는 선생님의 인솔 아래 스케치북을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팻말이 꽂힌 나무를, 짹짹거리는 작은 참새를,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의 눈앞에는 푸른 나비가 어른거렸다. 일회용 카메라를 드는 사이 다른 세계로 떠난 나비를 스케치북에 되살렸다. 방과 후에는 도서관에서 나비 도감을 펼쳐 보았다. 삼천 종이 넘는 나비를 한 마리씩 넘기는 사이에 책을 읽던 친구들은 떠나가고, 해는 저물어 가고, 공원에서 본 나비를 찾지 못했지만 도서관을 나온 푸른 저녁에 나는 문득 파피루아라고 불러 본 것이다. 그리고 파피루아는 종교가 없는 내가 대성당에서 처음 기도를 올릴 때 떠올랐다. 군복을 입은 전우들은 각자의 소원 속에서 눈을 감았다. 내가 파피루아라고 속으로 말하면 검은 ..
2022.01.14 -
남수우 「베란다 숲 기억」
1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란 말은 썩 괜찮았다 단추는 빛나다 사라지고 내게는 빈 들판이 남았다 그곳에서 내 뒤를 밟으며 사냥감들은 여러 날을 살았다고 한다 빈손을 보고도 말이 없던 마망 숲을 흔들며 쌀뜨물 같은 안개를 흘려보내던 마망은 어느 날 자신의 녹슨 총구를 닦고 있었다 그날 마망이 겨눈 사냥감들이 새벽 내도록 내 발 앞에 척척 쌓여만 갔다 2 내가 태어날 때 마망은 울고 있었다 그날 움켜쥔 소맷자락이 손금으로 남았는데 어린 내가 어린 숲에서 주워온 것들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마망, 여기 반작이는 것들을 봐요 마망은 차갑게 식은 총구를 고쳐 매며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 숲은 자라야겠구나 내가 다 자라 숲을 떠맡았을 때 마망은 노을을 끌고 맴을 돌던 기억..
202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