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 / 머나먼 교전
2020. 6. 12. 19:41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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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 머나먼 교전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화먼 속에 건물 잔해가 나뒹군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다 미처 피하지 못해 연기 속에 파묻힌 사람들이 있다 들것에 실려 화면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이 있다 붉은 모자이크를 덮고 일렬로 누운 사람들이 있다 새까만 발바닥과 발바닥
입안에서 고구마가 굴러다닌다
당장의 고구마 나에게 닥친 고구마 입안에서 벌어지는 고구마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게 달려드는 고구마 어찌할 도리 없이 달고 뜨거운 고구마 정말 큰일이야 어쩌면 좋아 나는 고구마를 피해 달아나다가 고구마를 살살 달래보다가 고구마를 이로 잘게 부수면
불타는 시가지를 바라보던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며 손을 뻗는다 잡아달라는 듯이
잡아보라는 듯이
화면은 좌우로 흔들리다 끝이 난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으깨지는 노란 속살 서서히 녹아 사라진다 멀어지는 총성처럼 교전 영상 속에 살던 사람들처럼 고구마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입안에 감도는 희미한 단맛, 교전보대 오래 지속되고
입 사이로 연기가 풀풀 피어오른다 나는 평생 전운을 느껴본 적 없고 달다 혼자 중얼거린다
김지민 / 머나먼 교전
(현대문학 신인추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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