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 시월
2020. 6. 23. 01:33ㆍ同僚愛/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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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 시월
혼자 했던 전쟁에서 늘 패하고 있었다. 그걸 시월에 알았다.
잊을 테니까 아프지 말라고 너는 어두운 산처럼 말했다. 다시는 육지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시는 길게 앓지도 않겠다고 너는 낡은 트럭에 올라타면서 웃었다.
매미들의 잔해가 마른 낙엽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마을버스를 세 대나 놓치며 정류장에 서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자동차의 불빛들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세상의 모든 느낌이 둔탁해졌다. 입맞춤도 사죄도 없는 길을 걸었다. 동네에서 가장 싼 김밥을 팔던 가게 앞을 지나면서 다가올 날들에 대해 생각했다. 방금 운 듯한 하늘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디에는 진눈깨비가 내렸다고 했다. 저만치서 무성했던 풀들이 힘없이 시들어갔다. 실눈을 뜬 채, 담장 너머 검게 목이 꺾인 해바라기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연 / 시월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문학과지성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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