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 Cold Case 2

2020. 12. 31. 10:36同僚愛/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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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 Cold Case 2

(19세기 사람 쥘 베른이 쓴 「20세기 파리」라는 소설에 보면 시인이 된 주인공에게 친척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안에 시인이 나오다니 수치다.")

20세기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시는 수치가 된 걸까.

시는 수치일까. 노인들이 명함에 박는 계급 같은 걸까. 빵모자를 쓰는 걸까. 지하철에 내걸리는 걸까.

시가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랑 더 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시 쓸 영혼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본다.

싸구려 호루라기처럼 세상에 참견할 필요가 있을까. 노래를 해서 수치스러워질 필요가 있을까? 자꾸만 민망하다.

그런데도 왜 난 스스로 수치스러워지는 걸까. 시를 쓰는 오후다.

불머리를 앓고도 다시 불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를 집어 든다.

 

 

 

허연 / Cold Case 2

(허연, 오십 미터, 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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