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준 / 생경한 얼굴
2020. 2. 27. 14:53ㆍ同僚愛/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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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 생경한 얼굴
따라와 바다를 지나면 골목이 나올 거야 왼쪽으로 돌거나 두 블록 먼저 꺾거나 아무튼 전등이 축축하게 켜질 때 첫 번째로 보이는 여관 말이야 거기서 혼자가 아닌 우리였던 적이 있어 비린내 나는 이야기지만 바다가 고요해지고 달이 차오르면 낯선 냄새로 북적이는 그 동네 말이야 여관 방 벽지에 낙엽이 말라가고 그리움이 천장까지 닿을 때 우리는 버석버석한 섹스를 나누었지 그날 우리는 시소를 탔어 갈망의 무게만큼 발돋움이 심했던가 나는 언제나 낮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르겠다 너는 모래에 발이 패인다고 투덜거렸지 돌아온 방안에서 우리는 양말을 뒤집어 조개를 찾거나 퇴적층 겹겹이 냄새를 말렸어 몰래 배가 부풀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 내 몸에 쌓이는 게 모래나 바다라면 잠든 네 발로 내 속을 패이게 만들었을 텐데 그랬다면 죽어도 울지 않는 태생 같은 건 몰랐을 텐데, 전등이 꺼지기 전에 아무튼 돌아가거나 먼저 두 블록 꺾어 왼쪽으로 나오면 골목 보이지 그 수족관에 알을 낳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아침으로 알탕을 먹는다 입안에서 알이 터질 때마다 응앙응앙 소리가 들리는 건 비밀로 하자
김희준 / 생경한 얼굴
(김희준, 두레문학 제24호, 두레,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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