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준 /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2020. 11. 21. 01:30同僚愛/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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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나는 반인족

안데르센의 공간에서 태어난 거지

오빠는 속눈썹이 가지런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잠그면 매일 같은 책을 집었다 모서리가 닳아 꼭 소가 새끼를 핥은 모양이었다 동화가 백지라는 걸 알았을 땐 목소리를 외운 뒤였다 내 머리칼을 혀로 넘겨주었다는 것도

내 하반신이 인간이라는 문장

너 알고 있으면서 그날의 구름을 오독했던 거야

동화가 달랐다 나는 오빠의 방식이 무서웠다 인어는 풍성한 머릿결이 아니라고 아가미로 숨을 쉬었기에 키스를 못한 거라고 그리하여 비극이라고

네가 하늘을 달린다

팽팽한 바람으로

구름은 구름이 숨쉬는 것의 지문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누워서 구름의 생김새에 대해 생각하다가 노을이 하혈하는 것을 보았다 오빠는 그 시간대 새를 좋아했다 날개가 색을 입잖아, 말하는 얼굴이 오묘한 자국을 냈다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오빠에게 오빠의 책을 읽어준다 우리가 읽어냈던 구름을 베개에 넣으니 병실 속 꽃처럼 어울린다 영혼이 자라는 코마의 숲에서 알몸으로 뛰는 오빠는 언제나 입체적이다 책을 태우면서 연기는 헤엄치거나 달리거나 다분히 역동적으로 해석되고

젖은 몸을 말리지 않은 건 구름을 보면 떠오르는 책과 내 사람이 있어서라고

너의 숲에서 중얼거렸어

 

 

 

김희준 /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김희준,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문학동네,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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