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9. 05:24ㆍ同僚愛/양안다
양안다 / 진단
토할 때까지 음식을 구겨 넣지 마세요, 술을 줄이세요, 담배를 피웁니까, 가족과는 화목하군요, 애인이 있습니까,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어때요, 어렵진 않나요, 극단적인가요,
왜 죽고 싶습니까,
……모르겠다고 했어 죽고 싶은지 아닌지도 모르겠는데 이유를 말하라면 더 모르겠고 그걸 확인하려고 그곳에 갔었어 그날은 오래 걸었지 모르는 길을 걸으면 모르는 장소가 생기고 정서가 생기는데 어떤 이름이 붙여야 할까 넌 알아? 멀리 걸어서 먼 곳까지 갔다는 너는 정답을 알아? 나는 종종 공원에 앉아 바닥을 쪼는 새들이 날아오르길 기다린다 일제히 날아오르는 광경, 너와 함께 본다면 좋을 텐데
네가 내 손을 잡던 때를 기억한다 어깨를 감싸고 괜찮아 긴장하지 마, 그런 목소리가 다정해서 나는 네가 떠들도록 내버려두었다 너의 손목이 차갑고 딱딱한 게 시체 같았는데 너는 내 굳은 표정을 보곤 시체 같다고 했지 넌 말이 많구나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 잘 듣는 척을 하는 사람 너의 걱정을 듣는 척하며 머릿속에서 시나리오 한 편을 작성했다 다정한 시체 다정하지 않은 시체
우리는 기나긴 사람들의 행렬 끝에서 걸었다 왜 걷는지는 몰랐으나 누군가를 죽이자는 말을 자꾸 들었다 너는 내가 가방을 너무 낮게 멘다고 말했고 나는 그렇게 메는 게 좋다고 했다 가방에 뭐가 들었어? 칼, 모두를 죽이려고, 너와 함께 모두를 죽이고 싶어, 대답했을 때 너는 우리의 꿈이 같다며 씩 웃었다 같이 외쳤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죽이자고, 전부 그어버리자고,
깃발을 높게 들며,
그러나 부족해요, 저번과 달라진 게 있나요, 잠은 잘 잡니까, 어떤 꿈을 꾸나요, 아까 말한 죄책감은 무엇에 대한 죄책감입니까, 운동을 합니까, 좀 하세요, 되도록 수영이나 달리기 같은 혼자 하는 운동을……
그리고
기념일마다 구입한 다육식물, 줄 지어 서 있는 화분들, 그것에 대해
너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쪽 벽에 쌓아놓은 책들
가끔은 무너지기도 했는데
네가 추천한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버림받고 떠났기 때문에 나는 네가 사라질까 봐 겁이 났다 그것은 너와 잘 어울린다 너는 창문으로 빛을 물어온 새가 지저귀는 장면을 본 것처럼 말하고 가끔은 전 지구적인 윤리에 대해서 말한다 있지, 가끔은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곤 해 네가 나를 더 일찍 가르치고, 내가 너를 망가뜨리는 꿈을 수도 없이 꿨어 그리고 아주 가끔은
너에게 참을 수 없는 살의를 품는 꿈
새들이 날아오르는 날
가방 속 칼 하나를 품고
너를 쫓아가겠다고
심한 몸살을 앓다 깨어났을 때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기억에 없는 글이었다
'한파가 끝나지 않는 계절, 너는 내 뺨을 치고 달아났다. 거리에서 동냥을 하던 이들이 모두 얼어 죽은 뒤의 일이었다. 나는 홀로 눈보라 속을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갔다. 거리에 주차된 차들을 열쇠로 그으면서. 그것을 보고 네가 찾아올까 봐.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동사한 이들의 신발을 걷어차면서, 멀리 날아가길 바라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너희는 내내 신성하여라, 신성한 곳으로……'
참아야 합니다, 동물을 키워보세요, 사랑을 해보세요, 소문을 만들어보세요, 거짓말을 하세요, 거짓말을 숨기는 더 큰 거짓말과, 그리고, 그리고……
고쳐 묶은 신발 끈이 자꾸 풀린다
그래도 묶고 또 묶으며
너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뒤집어지는 마음속에서
이상해
잠이 쏟아져,
죽은 너의 단면을 상상했다
양안다 / 진단
(창작동인 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아침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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