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다 / 장미성운
2020. 11. 29. 05:27ㆍ同僚愛/양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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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 / 장미성운
우리가 빛과 빛 사이에 놓여 있을 때
이곳이 어디인지 잠시 잊고 그 사실이 불편하지 않다면
너는 종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는데
우리의 일부가 끝없이 확산되는 시간
붉은 병이 깨지자 주변이 온통 꽃밭이었다
손목을 그으려고 했어, 그런 말을 쉽게 하게 되고
폭우 속에서 걷는 연인을 바라보며 그들의 대화를 상상해 보는 일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휩쓸리고 있다고
우리가 어둠 속에 놓여 있을 때
언젠가 들었던 예언을 떠올리며 서로를 미리 증오하고
너는 눈이 내린다고 말한다 나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는데
풍선을 삼키고 그냥 터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때도 날 보러 와 줄래?
춥고 어둡다며 네가 울먹였을 때 나는 불과 빛 중 무엇이 우리에게 절실한지 고민했다
한 권의 일기장을 함께 채워 나가면 좋겠다 각자의 과거를 서로 대필해 주며
진득한 액체가 발끝을 적신다, 널 위해 짧은 소원일 빌어 줄까
멍든 부위마다 꽃을 그려 주겠다며 네가 파스텔을 집어 들 때
창문 밖으로 섬광이 번쩍인다 나는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는데
너는 이곳에 불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네가 불 속에 있었기 때문에
양안다 / 장미성운
(양안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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