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신 「리플리컨트 노트」
2021. 1. 1. 22:25ㆍ同僚愛/정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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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들면 어떤 결정에 확신을 주듯
비가 내렸다
혹은 그 결정을 머뭇거리게 하듯
비가 쏟아졌다
빗줄기를 묶다 보면
나는 공구 상가 뒷골목의 절단된 환봉처럼
서늘하게 굴러다녔다
자꾸 끊기는 빗줄기 속에서
너희는 투명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쇳덩이를 자르고 자루에 담으며
골목을 지키다 보면
나는 달궈지고 깎여나가고
녹아내렸다
쇠를 두드리는 소리는
밤거리를 몇 바퀴 돌다가 너희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
함께 마셨던 차
마지막 순간의 그 눈빛을 돌게 했다
얼굴을 보려는 순간
톱날
내가 시작되는 건
너희가 아직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내가 그곳까지 자라지 못하는 건
톱날
사랑이 없기 때문에
잡초를 뽑다가 펭귄이 딸려 나올 일은 없을 텐데
진심을 담은 편지를 적는다고 도움이 될까
네온사인과 포르노 그리고 국수를 파는 포장마차가 수십 킬로 이어진 거리
그곳에서는 비가 기계처럼 내렸다
유행이 그대로였고
즐겨 먹던 음식에 뿌리는 향신료도 그대로였다
11월이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11월에 드는 나쁜 기분은 대체로 맞다
실패한 사무라이처럼 칼자루까지 밀어 넣거나
혀라도 깨물고 죽어야 하는데
결단이 필요한데
나의 금속 어깨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빗속으로 뛰어드는 생물이 있다
장수양 외, 도넛 시티, 은행나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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