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 10:31ㆍ동그린/그래서 무얼
도서를 구입했을 때가 2017년. 인터넷으로 우연히 「무화과 숲」을 보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 선하다. 당시 다른 시인들의 시집을 읽곤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게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분들께는 유감스럽다.
어찌 되었건 『구관조 씻기기』를 정독하고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런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5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 '황인찬' 시인을 뒤늦게 안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오래도록 시를 읽어왔지만 그런 내게 지독할 정도의 자극과 열병을 준 시집이므로, 이 카테고리의 첫 번째 게시물로 선정한다.
평소 '시인의 말' 읽기를 무척 중요시하는데 『구관조 씻기기』에서는 목차 바로 앞에 위치하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목차. 제목이 전체적으로 길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작품의 문체와 일치하는 모습이다.
나무는 서 있는데 나무의 그림자가 떨고 있었다
예감과 혼란 속에서 그랬다
2012년 겨울
황인찬
1부
건조과 / 구관조 씻기기 /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듀얼 타임 / 순례 / 캐치볼 / 유체 / 서클라인
여름 이후 / 낮은 목소리 / 목조건물 / X / 개종
2부
개종2 / 면역 / 거주자 / 항구 / 파수대 / 구조 / 구획 / 발화
돌이 되어 / 저수지의 어둠 / 물의 에튜드 / 소용돌이치는 부분
독개구리 / 나의 한국어 선생님 / 연인-개종3 / 번식 / 너와 함께 / 축성
3부
모두 잘 되어가고 있다 / 식생 / 장막의 뒤에서 자꾸 / 구원 / 방사
기념사진 / 레코더 / 말종 / 의자 / 얼룩-개종4 / 그것 / 법원 / 점멸
입장 / 속도전 / 예언자 / 서울대공원 / 엔드게임 / 유독 / 개종5
4부
혼자서 본 영화 / 세컨드 커밍 / 히스테리아 / 무화과 숲
작품해설
박상수,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
'황인찬' 시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깨끗하다는 인상을 준다. 노이즈가 전혀 없는 스피커를 통해 뉴에이지를 감상하는 기분. 순수를 지향하면서 명료하고 고요하다. 마음에 드는 작품과 구절을 소개하려면 목차에 있는 전 작품을 끌어와야 하는데 그것은 지나친 신앙이고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일부만 발췌하고자 노력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황인찬' 시인의 문장은 의외로(?) 평범하다. 꾸밈없고 일상적이다. 다만 구성이나 배치, 그리고 반전을 통해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구관조 씻기기」에서는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를 통해 명명백백하고 입체적인 이미지를 낳는다.
바로 다음 이어지는 작품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황인찬' 시인의 등단작 중 하나로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이가 배가 된다. 등단작으로 꼽힌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싶다. 오싹할 정도의 울림과 고요. 무심하면서 역동적이다. n차 낭독을 하고 나면 정말 내가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으로 휩쓸려 가는 감정이 든다.
나의 취향을 제대로 관통한 시 「항구」. 다른 작품에 가려져 인지도가 생각보다 덜하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기도 한다. 이 작품 또한 「구관조 씻기기」와 유사한 패턴이 적용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마지막 문장 '바위게 한 마리가 발등을 물었다'가 「항구」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항구」에 이어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개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믿음과 골목 끝에서 화자를 바라보고 있는 개를 엮어내는 시인의 솜씨. 절제된 공포가 징그러울 정도로 무서워서, 가슴이 쿵쿵 뛴다.
「방사」는 화자에 대한 설정과 감정선이 「무화과 숲」과 동일하다는 느낌을 준다. 나는 두 작품이 꼭 화자의 성장 전후로 갈라서는 속편 같다. 시인의 의도는 아닐 수 있겠지만 감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므로 의미를 부여하고 읽으면 더욱 재미있다. '방사'라는 제목은 놓아주는 것과 마음이 온 사방으로 흩어지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알'은 화자가 긴 시간 유보해 온 감정의 집약체가 아닐는지.
함께 영화를 보았는데, '혼자'로 단정 짓는 자세가 아프다. 작품에서 직접적인 거론은 없지만 화자가 군인의 휘파람을 보지 못했듯, 그도 아마 '가는 비'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각자만 주시할 수 있는 '슬픔'과 '고독' 속에서 마지막 연 '비옷을 입은 아이들'도 화자만 볼 수 있는 환영이었을 테.
『구관조 씻기기』의 마지막 작품, 「무화과 숲」. 이 작품 덕에 나는 '황인찬' 시인의 작품에 입문할 수 있었다. 아무때나 눈을 감고도 줄줄 욀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라니. 현실에서 '그 사람' 앞에 선 화자는 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 심히 위축되어 있는 화자의 시린 정서가 오롯이 전달된다. 꿈에서만큼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도 혼나지 않길.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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