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겨울 그 밤마다」

2021. 2. 3. 22:09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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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끓고 있다

어느 젊음이 조금씩 줄어들며

끓고 있었다

난로가에는

물수건 하나가

물기를 가시며 말라가고

누구의 넋인가

하얀 김이 천장을 향해

나르고 있다

사라져 어둠이 되는

한 방울 물의 흔적이

내 가슴 중심에 맺혀

끓어오른다

속도를 좁히며

끓는 물소리

초조로이 멀어져 가는

소리를 이어 받으며

물이 졸아든다

달아오른 빈 주전자에 찬물을 따르는

겨울밤 겨울밤

양팔을 벌리며

머리 위부터

찬물을 끼얹는 나의 젊음아

밤마다 밤마다

잠 속으로 이끌고 들어 가는

미완의 고백

미완의 용서

그런 것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베개 모서리 어디쯤서 끓고 있다

끓고 있다

나의 젊음이 조금씩 줄어 들며

끓고 있었다.

 

 

 

from Aleks Marinkovic

 

 

 


 

 

 

신달자, 백치슬픔, 자유문학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