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주 「다큐멘터리」
2021. 4. 16. 16:13ㆍ同僚愛/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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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의 입체성을 믿지 않는다. 그것에게 옆모습이 있다고?
원숭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리 너머의 원숭이는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바나나 껍질을 던진다.
원숭이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유리에 비친 자신의 붉은 얼굴과 긴 코트를 입고 멀뚱히 서 있는 내 모습이 겹쳐 있다.
어쩌면 원숭이는 나를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악몽 같은 형상을 향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원숭이에게 우리이고 내게는 화면인 것. 그것에 얼굴을 가져다 댄다.
유리는 너무 차가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유리와 닿은 부분 말고는 모두 지워지는 기분이다.
원숭이의 공격성이 유리를 깨부술 수는 없을까.
원숭이는 내가 서 있는 곳이 바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거나 등지고 앉지 않는다.
원숭이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달의 개수와 무관하게
달의 이름은 여럿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달의 변화라기보다는 그림자의 변화.
부를 수 있는 것과 부를 수 없는 것. 원숭이의 눈동자 위로 떠오른 빛 같은
조명을 켜면 원숭이에게서 뾰족한 영혼이 솟아난다.
조해주,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아침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