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 12월
강성은 / 12월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