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최지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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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 복잡한 일
최지인 / 복잡한 일 너는 어느 외국 작가의 출생 연도를 잘못 표기했다는 이유로 죽고 싶다고 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나는 일이 힘들어서 버는 돈이 적어서 집이 좁아서 책 둘 곳이 없어서 요리를 하면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혼자 살아서 문득 외로워져서 어디야 뭐 해 묻는 네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죽는 게 무서워서 깊은 잠에 빠졌다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내가 아무도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사무 의자에 앉아 원고 뭉치를 뒤적였다 열여덟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현장에선 매캐한 냄새가 났고 출입구 곳곳에 혈흔이 발견됐다 대출이자와 신용카드 대금 각종 공과금 외에도 마땅한 도리 책임 그리고 아득해지는 삶 좌변기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 네가 소리를 질렀다 네가 가리킨..
2020.11.18 -
최지인 / 기다리는 사람
최지인 / 기다리는 사람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였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 등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에 화분도 여러 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
2020.11.18 -
최지인 / 죄책감
최지인 / 죄책감 너와 손잡고 누워 있을 때 나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 세계의 끝은 어디일까 수면 위로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빛바랜 벽지를 뜯어내면 더 빛바랜 벽지가 있었다 선미船尾에 선 네가 사라질까 봐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컹컹 짖는 개를 잠들 때까지 쓰다듬고 종이 상자에서 곰팡이 핀 귤을 골라내며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기도했었다 고요했다 태풍이 온다던데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최지인 / 죄책감 (창작동인 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아침달,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