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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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로스빙」
당시 우리집은 살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걷기엔 멀고 자전거를 타기엔 알맞은 거리로 나는 매일 저녁 자전거를 타고 살구 킬로미터를 달려갔다. 로스빙은 자전거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해가 지는 저녁을 돌아나와 함께 집으로 오곤 했다. 로스빙은 꿈에서 온 개였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로스빙은 베개맡에 앞발을 세우고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 등롱을 걸어 문간을 밝히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 어떠세요 아버지 마음에 드세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등롱이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더 말이 없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작별하고 싶었다. 달리 올 사람도 ..
2022.01.20 -
황인찬 / 퇴적해안
황인찬 / 퇴적해안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어릴 적 보았던 새하얀 눈밭 살면서 가장 슬펐던 때는 아끼던 개가 떠나기 전 서로의 눈이 잠시 마주치던 순간 지루한 장마철, 장화를 처음 신고 웅덩이에 마음껏 발을 내딛던 날, 그때의 안심되는 흥분감이나 가족들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농담에 서로 한참을 웃던 날을 무심코 떠올릴 때 혼자 짓는 미소 같은 것들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들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평범한 주말의 오후 거실 한구석에는 아끼던 개가 엎드려 자기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얘가 왜 여기 있어 그럼 지금까지 다 꿈이야? 그렇게 물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개만 엎드려 있었다 바깥에는 눈이 내린다 나는 개에게 밥..
2020.12.24 -
김신혜 / 최선의 감옥
김신혜 / 최선의 감옥 설원의 끝에는 북쪽이라 불리는 감옥이 있다 불에 타 죽은 개와 얼어 죽은 개가 나란히 매달려 있다 열쇠 꾸러미를 허리춤에 달고 걷는 교도관과 보폭을 맞추는 죄수들 그것이 최악인 사람과 그것이 최선인 사람이 걸어간다 이미 죽은 사람이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는 가정 어느 방향으로도 짖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절벽을 오른다 아무도 북쪽 끝까지 가보지 않았지만 동전을 던지고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깊은 웅덩이를 만든다 얼어 죽은 개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무덤 속을 비추면서 바닥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파리는 시들지 않고 죽어가는 개는 죽지 않는다 사과나무 위에 피어나는 사과나무들 씨앗이 싹틀 때 씨앗을 낚아채는 새의 발톱 그림자 하나로도 수백 개의 음표가 완성되..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