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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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 미래의 연인 ― 끝의 무성영화
이성진 / 미래의 연인 ― 끝의 무성영화 1 네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시간 머리카락도 처음엔 길이었을 것이다 2 똑같은 구름이 평생 너를 따라 다녔다 그게 심심해서 금요일과 저녁의 경계선과 옥상에서 부는 바람과 봉지 안에 담긴 캔맥주와 우린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너와 계절을 나눠 쓰던 밤과 방과 바깥들 양치질을 하며 마주 보고 선 우린 서로의 얼굴을 베끼며 웃곤 했다 손톱들이 말하지 않고 조는 모양으로 서로의 등으로 스며들면 나오던 너의 취미들 그런 날들의 문 밖은 대체로 하얀 태양처럼 선선했다 3 야간열차가 좀 더 어두워지기 위해 달리는 밤과 많이 추운 등 마지막 인사는 서로 인사하지 않는 게 인사하는 거지 너의 목소리에서 겨울이 새는 소리가 났다 코에서 피를 흘리며 다..
2020.08.06 -
양안다 /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을 쥐고
양안다 /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을 쥐고당신이 금요일을 사랑해서 금요일에 만났다금요일이면 같이 커피를 마시고골목을 걷고그러나 이상하게도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지저번 금요일에는 그림을 그렸다 내가 빈방을 스케치하는 동안왜 사람을 그리지 않는 거죠, 당신이 말했다다음 금요일에는 무엇을 할까아내를 지독하게 사랑했다던 화가의 전시를 본다아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대화가는 신을 찾았을까우리는 갤러리를 걸으며 화가의 미래로 향한다저기, 저 새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요교회가 세워진다악마를 그렸구나 불구덩이에 화가의 미래가 있어그런데우리 미래는 어디에 있어?*누가 액자의 간격 같은 걸 정하는 걸까나는 관람객을 관람하고 있을 죽은 화가의 영혼을 상상했다 그는 떠나는 관객을 웃으며 마중했으나 뒤돌아서자..
2020.06.03 -
김경인 / 금요일에서 온 사람
김경인 / 금요일에서 온 사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지는 않아요 나는 절룩거렸고 나는 뒤로 걸었고 어제는 청어를 먹고 드라이브를 떠났어요 가시 많은 고슴도치처럼 껴안았죠 우리에겐 지도가 없었고 난 어제, 라는 말을 가장 좋아하지만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건 오른쪽이나 왼쪽일 거예요 흙먼지 속에서 뿌옇게 지워진 내가 걸어왔다면 아마 거길 거예요 사람들은 아주 가끔 신기한 듯 물었죠 너는 참 이상하게 걷는구나, 길을 끌고 다니듯 그건 아마 내 안의 길들이 무릎 아래로 끌어당기기 때문이겠죠 당신이 걷는 길에 내 발자국이 찍혀 있다면 끝나지 않는 골목과 높은 담들 늙어서도 울고 있는 아이를 지나 그렇게 왔을 거예요 그건 긴긴 금요일의 길 위에서였을 거예요 김경인 / 금요일에서 온..
2020.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