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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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 / 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기혁 / 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마음이 아플 땐 돌멩이를 던진다 광물에 남겨진 시간을 떠서 허공의 정점에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서로 다른 지층에 묻힌 응어리가 옹기종기 조약돌로 평화로운 정오에도 물수제비뜨는 연인의 돌멩이는 수면 가장 높은 곳까지 떠오른다 지상에서 처음 타인의 마음에 가닿았던 흔적들 돌멩이를 집어 들던 무수한 감정은 강물 위에서도 깊고 거대한 속내를 지닌다 이별의 방향으로 벼름하는 생활을 거슬러 올라, 매 순간 허공을 쥐는 손아귀를 본다 더 큰 사랑을 바라보고 더 큰 빈 곳에 휘청거리던 저녁의 저글링 돌멩이에겐 곡예사의 어투를 물려받은 조상이 있다 분장이 다 번진 얼굴로 거들어줄 손 하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기혁 / 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편집부,..
2020.12.21 -
기혁 / 아지랑이
기혁 / 아지랑이 꽃밭에 가면 모두가 철제 침대에 묶여 있다. 하늘을 보며 히죽히죽 웃던 아이가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눈다. 아무런 기약이 없어도 슬퍼할 일들은 볼일로 남는다. 찢어진 채 흔들리던 겨울의 보호자, 입원 동의서를 써준 그가 다녀갔다. 기혁 / 아지랑이 (기혁, 소피아 로렌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2018)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7.08 -
기혁 / 무연탄
기혁 / 무연탄 악몽을 꾸지 않아도 두터워지는 설태처럼 나날이 어두워지는 아랫목 수십 개의 눈으로 충혈된 연탄이 사람의 낯빛으로 식어간다 뭉칠수록 단단해지는 하드 밥*의 눈이 내리면 재로 변한 이목구비를 가진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온다 두 덩어리로 눕는다 뜨거움이란 가장 높은 온도에서 흰빛을 내는 것 눈사람의 냉가슴을 위태롭게 쌓아 올리고 또다시 두근거릴 순간을 고대하는 것 고대 지층의 흑심을 품고서야 겨울을 보낼 웃음을 가졌지만 입맞춤할 체온은 두 번씩 찾아오지 않는다 무심한 곁눈질에도 진창으로 화답하던 뒷골목의 나날들 젖은 눈을 뭉치던 아이가 운다 녹아내린 심장 위로 얼룩무늬 스웨터를 벗어 주고 갔다 기혁 / 무연탄 (기혁, 소피아 로렌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
2020.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