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바닐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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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손차양 아래」
만들어낸 그늘 밑 잠기는 볕 말려드는 이마와 말들이 겹치는 잠시의 잎사귀 속 죽은 자의 이마에 얹히는 부드러운 흙 같은 그런 색은 불안해 캄캄한 피들을 이어붙여 손 안쪽에 넣어두다니 낯설어진 옆얼굴을 바라보며 눈가에 드리워진 얼룩이 얼굴로 달라붙는데 부러 지어먹은 마음이 절벽을 만들 때 여름을 끌고 오는 손짓들이 미리 당겨 무덤을 쓰나 빛으로 뭉쳐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반만 남은 입술을 바라본다 너의 화환이자 나의 죽은 꽃을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사, 2016
2021.05.06 -
이혜미 / 뜻밖의 바닐라
이혜미 / 뜻밖의 바닐라 귓바퀴를 타고 부드럽게 미끄러졌지. 미묘한 요철을 따라 흐르는, 그런 혀끝의 바닐라. 수없이 많은 씨앗들을 그러모으며 가장 보편적인 표정을 지니려. 두근거리며 이국의 이름을 외웠지. 그건 달콤에 대한 첫번째 감각.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각별한 취향. 녹아내리는 손과 무릎이 있었지. 차갑고 뜨겁게 흐르는, 접촉이 서로를 빚어낼 때. 소리의 영토 안에서 나는 세로로 누운 꽃. 손끝에서 점차 태어나. 닿아 녹으며 섞이는, 품이라는 말. 그런 바닐라. 적당한 점도의 안구를 지니려. 모르는 사람을 나는 가장 사랑하지. 잃어버리는 순간 온전해지는 눈꺼풀이 있었다. 순한 촉수를 흔들며 미끄러지다 흠뻑 쓰러지는. 이혜미 / 뜻밖의 바닐라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
202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