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 뜻밖의 바닐라
2020. 11. 28. 00:33ㆍ同僚愛/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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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뜻밖의 바닐라
귓바퀴를 타고 부드럽게 미끄러졌지. 미묘한 요철을 따라 흐르는, 그런 혀끝의 바닐라.
수없이 많은 씨앗들을 그러모으며 가장 보편적인 표정을 지니려. 두근거리며 이국의 이름을 외웠지. 그건 달콤에 대한 첫번째 감각.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각별한 취향.
녹아내리는 손과 무릎이 있었지. 차갑고 뜨겁게 흐르는, 접촉이 서로를 빚어낼 때. 소리의 영토 안에서 나는 세로로 누운 꽃. 손끝에서 점차 태어나. 닿아 녹으며 섞이는, 품이라는 말.
그런 바닐라. 적당한 점도의 안구를 지니려. 모르는 사람을 나는 가장 사랑하지. 잃어버리는 순간 온전해지는 눈꺼풀이 있었다. 순한 촉수를 흔들며 미끄러지다 흠뻑 쓰러지는.
이혜미 / 뜻밖의 바닐라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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