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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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영 「모잠비크 드릴」
몸속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다 그것들은 애완 먼지였으므로 모두에게 이름을 지어 줘야 했다 그것들은 서로 너무 닮았고 작았다 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거짓과 진실을 섞어 진실한 거짓말을 만들었다 천사의 뒤편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고 있다 그림자가 있겠지 그래 독실한 신성모독자인 그는 매 순간 신을 욕보였지만 기록에 남는 불경이 필요해서 문장을 지었다 신이 잠들었을 때 그의 안구가 보고 있던 것은 우주 속을 떠도는 찻주전자 하나 아름다운 일인용 지옥 신 없다,가 있다 있다,가 없다 평범한 일은 이상하다 이상한 일이 평범하다 믿음은 참 안온하지 신이 있다면 신이 없다면 신을 믿는 사람이 주는 마음은 꼭 잔반 같았는데 그는 싫어하지 않았다 시 같은 걸 쓴다고 믿는 김건영은 잔반을 받아먹고도 살이 ..
2021.03.15 -
이현호 「붙박이창」
그것은 투명한 눈꺼풀 안과 밖의 온도 차로 흐려진 창가에서 "무심은 마음을 잊었다는 뜻일까 외면한다는 걸까" 낙서를 하며 처음으로 마음의 생업을 관둘 때를 생각할 무렵 젖는다는 건 물든다는 뜻이고 물든다는 건 하나로 섞인다는 말이었다, 서리꽃처럼 녹아떨어질 그 말은. 널 종교로 삼고 싶어, 네 눈빛이 교리가 되고 입맞춤이 세례가 될 순 없을까 차라리 나는 애인이 나의 유일한 맹신이기를 바랐다 잠든 애인을 바라보는 묵도 속에는 가져본 적 없는 당신이란 말과 곰팡이 핀 천장의 야광별에 대한 미안함이 다 들어있었다 그럴 때 운명이란 점심에 애인이 끓인 콩나물국을 같이 먹고, 남은 한 국자에 밥을 말아 한밤에 홀로 먹는 일이었다. 거인의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듯 창밖은 깜깜, 보풀 인 옷깃 여미며 ..
2021.01.24 -
양안다 / 장미성운
양안다 / 장미성운 우리가 빛과 빛 사이에 놓여 있을 때 이곳이 어디인지 잠시 잊고 그 사실이 불편하지 않다면 너는 종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는데 우리의 일부가 끝없이 확산되는 시간 붉은 병이 깨지자 주변이 온통 꽃밭이었다 손목을 그으려고 했어, 그런 말을 쉽게 하게 되고 폭우 속에서 걷는 연인을 바라보며 그들의 대화를 상상해 보는 일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휩쓸리고 있다고 우리가 어둠 속에 놓여 있을 때 언젠가 들었던 예언을 떠올리며 서로를 미리 증오하고 너는 눈이 내린다고 말한다 나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는데 풍선을 삼키고 그냥 터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때도 날 보러 와 줄래? 춥고 어둡다며 네가..
202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