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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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 복잡한 일
최지인 / 복잡한 일 너는 어느 외국 작가의 출생 연도를 잘못 표기했다는 이유로 죽고 싶다고 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나는 일이 힘들어서 버는 돈이 적어서 집이 좁아서 책 둘 곳이 없어서 요리를 하면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혼자 살아서 문득 외로워져서 어디야 뭐 해 묻는 네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죽는 게 무서워서 깊은 잠에 빠졌다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내가 아무도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사무 의자에 앉아 원고 뭉치를 뒤적였다 열여덟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현장에선 매캐한 냄새가 났고 출입구 곳곳에 혈흔이 발견됐다 대출이자와 신용카드 대금 각종 공과금 외에도 마땅한 도리 책임 그리고 아득해지는 삶 좌변기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 네가 소리를 질렀다 네가 가리킨..
2020.11.18 -
임솔아 / 아홉 살
임솔아 / 아홉 살 도시를 만드는 게임을 하고는 했다.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빌딩을 세우고 도로를 확장했다. 나의 시민들은 성실했다. 지루해지면 아이 하나를 집어 호수에 빠뜨렸다. 살려주세요 외치는 아이가 얼마나 버티는지 구경했다. 살아 나온 아이를 간혹은 살려두었고 다시 집어 간혹은 물에 빠뜨렸다. 아이를 아무리 죽여도 도시는 조용했다. 나는 빌딩에 불을 놓았다. 허리케인을 만들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UFO를 소환해서 정갈한 도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선량한 시민들은 머리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내 도시 바깥으로 도망쳤다. 나는 도시를 벽으로 둘러쌌다. 그러나 모든 것을 태우지는 않았다. 나의 시민들이 다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나..
2020.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