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 아홉 살

2020. 9. 20. 09:49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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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 아홉 살

도시를 만드는

게임을 하고는 했다.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빌딩을 세우고 도로를

확장했다. 나의 시민들은

성실했다. 지루해지면

아이 하나를 집어 호수에

빠뜨렸다. 살려주세요

외치는

아이가 얼마나 버티는지

구경했다. 살아 나온 아이를 간혹은

살려두었고

다시 집어 간혹은 물에 빠뜨렸다. 아이를

아무리 죽여도 도시는 조용했다.

나는 빌딩에 불을

놓았다.

허리케인을 만들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UFO를 소환해서 정갈한 도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선량한 시민들은 머리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내 도시 바깥으로 도망쳤다. 나는 도시를 벽으로

둘러쌌다. 그러나 모든 것을

태우지는 않았다.

나의 시민들이 다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나는 도시를

망가뜨렸다.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더 오래 게임을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나의

시민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아무래도

미안하지가 않다.

약간의 사고와 불행은 나의 시민들을 더 성실하게 했다.

 

 

 

임솔아 / 아홉 살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지성사, 2017)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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