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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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주 「낭독회」
어두운 방에서 그가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고 나는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촛불이 어둠을 낫게 할 수 있나요? 어둠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촛불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가 눈부셨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며 왼쪽에서 오른쪽 페이지를 읽어나갔다. 우기를 견디는 나무가 다 뽑혀 나가지 않은 것을 일종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를 견디는 어둠이 다 휩쓸려 나가지 않은 것을 언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은 엉키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풀어지지 않는 것. 나누어지지 않는 것. 손바닥과 손바닥이 겹치고 또 겹치다가 빈틈없이 메워지는 마음이 된다면 그것이 어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둠 속에서 형태가 남아 있던 손이 몰래..
2022.01.17 -
이수명 「물류창고」
어두워서 잠이 오지 않아 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는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어둠이 보고 있을 때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잠은 엉터리여서 자고 있을 때는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가 없어 와인이 도움이 될 거야 잔을 부딪치는 것이 도움이 될 거야 나도 돕는다 같이 마신다 오늘은 머리를 서쪽으로 하고 누웠지 잠은 잘 있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몸이 줄어들어 자고 나면 몸이 다 사라질 거야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야 이미 깨어 있어서 언제나 깨어 있어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해 아무도 나를 깨우지 못해 나도 그를 깨우고 싶지 않다 이윽고 환해서 아주 많이 환해져서 우리가 하는 말은 모두 틀려버릴 거야 그러나 아침이 오면 나는 아직 눈을 뜨고 있는 것 같다 이수명, 물류창고,..
2021.01.16 -
김행숙 / 이별여행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김행숙 / 이별여행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어젯밤 나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떠났네. 마지막 기차를 타고 네 시간을 달려 새벽이라고 부르는 시간에 도착했어. 나는 새벽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네. 안녕, 새벽. 바닷가 마을도 아닌데 멀리서 파도 소리가…… 민박집 주인이 손전등을 준비해 오라고 했어. 오는 길에 가로등이 없답니다. 양배추밭 사잇길로 어둠을 쏘아보며 씩씩하게 걸어오세요. 검은 고양이 같은 어둠에 대해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손전등으로 어둠을 비추니 내가 들킨 것처럼 으스스했어. 아, 안녕 어둠. 바닷가 마을도 아닌데 파도 소리가 멀어졌다 멀어졌다 가까워지네…… 왜 내게 인사도 하지 않는 거니? 네가 말했지. 글쎄, 나는 마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그..
202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