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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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 / 무연탄
기혁 / 무연탄 악몽을 꾸지 않아도 두터워지는 설태처럼 나날이 어두워지는 아랫목 수십 개의 눈으로 충혈된 연탄이 사람의 낯빛으로 식어간다 뭉칠수록 단단해지는 하드 밥*의 눈이 내리면 재로 변한 이목구비를 가진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온다 두 덩어리로 눕는다 뜨거움이란 가장 높은 온도에서 흰빛을 내는 것 눈사람의 냉가슴을 위태롭게 쌓아 올리고 또다시 두근거릴 순간을 고대하는 것 고대 지층의 흑심을 품고서야 겨울을 보낼 웃음을 가졌지만 입맞춤할 체온은 두 번씩 찾아오지 않는다 무심한 곁눈질에도 진창으로 화답하던 뒷골목의 나날들 젖은 눈을 뭉치던 아이가 운다 녹아내린 심장 위로 얼룩무늬 스웨터를 벗어 주고 갔다 기혁 / 무연탄 (기혁, 소피아 로렌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
2020.07.08 -
안희연 / 12월
안희연 / 12월 겨울은 빈혈의 시간 피주머니를 가득 매단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만 생각나 입김 한 번에 허물어지는 사람들이 이곳엔 너무너무 많다 너무라고 말하지 않고 너무너무라고 말하는 것 그래도 겨울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겠지 그래서 당신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강도를 높여가는 겨울의 질문 앞에서 나는 나날이 창백해진다 이렇게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도 괜찮을 걸까 기도가 기도를 밟고 오르는 세상에서 헐렁헐렁 산책하는 일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축축한 영혼을 나라고 부르는 일 다행히 겨울은 불을 피우기 좋은 계절이다 나에겐 태울 것이 아주 많고 재가 될 때까지 들여다볼 것이 있어서 좋다 "잘하고 못하는 게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 불 앞에서 다 식은 진..
202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