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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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규 / we all die alone
최백규 / we all die alone 가난한 애인이 장마를 삼켜서 어지러웠다 숲속에서 망가진 나무를 되감을 때마다 세상엔 일기예보가 너무 많고 내가 만든 날씨는 봄을 웃게 할 수도, 떨어뜨릴 수도 없어서 시들겠다는 비근함을 믿고 싶어졌다 마른 손목과 외로운 눈동자도 썩 어울렸다 거룩한 꽃을 오래 밟다가 잠들면 바람이 다 자살할 때까지 망가져 내리는 유성우 내일 밤 현실에 따뜻한 천사를 보면서 그곳이 천국이라 생각할 텐데 지금은 이대로 사라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내가 있고 어제 들은 음악과 며칠 전 봤던 영화에서도 사라지면 안 되는 것들만 사라져서 네가 웃을 때마다 누군가와 손잡고 걷는 꿈들을 꿨다 우리는 슬픈 것이 닮았고, 피가 달라서 더 슬프다 죄를 안고 함께 목 놓아 울어줄..
2020.09.15 -
구현우 / 공중 정원
구현우 / 공중 정원 한낮의 정원에서 아픈 꿈을 꿨다 막연하니까 더 분명한 마음이 있었다 한밤의 초목 완연한 구조물 앞에서도 통증이 지속되었다 꿈속에는 둘만 있었고 모르는 너를 아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었지만 혀끝이 굳어버렸고 흙냄새가 지독하게 너무나 독하게 감돌았다 실재하는 정경이 꿈의 정원을 닮아간다는 게 제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한낱 코끝에 맺혀 있는 네가 어떻게 미워질 수 있는지 신비로웠다 마지막을 짐작하지 못해서 꿈은 다만 끝을 향해가고만 있었다 물린 데가 없는데도 말할 수 없는 어느 부위가 참을 수 없이 가려웠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끝난 건 없어서 아픈 곳이 늘어난 후에야 비로소 천국을 그리워했다 예술이 있는 정원을 벗어나고도 나의 서사..
2020.07.16 -
최현우 / 천국
최현우 / 천국 하늘에서 하얀 섬광이 번쩍거렸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멍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보고 있었다 최현우 / 천국 (최현우,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문학동네,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