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3)
-
이혜미 / 근린
이혜미 / 근린 곧 만나 어둑한 공원 냄새가 났다 서성이다 희미해지는 마음 너무 가까워 닿지 못하는 공원의 발자국들 다정한 이웃들은 일요일 속에 있고 희박해지는 인사들은 어긋난 체온을 지니는데 우리는 무엇을 가졌나 무엇에 녹아내렸나 그건 왼쪽을 찢고 나온 말 곧 만나 곧 만나 나무가 색색의 손인사들을 맞추어 낯익은 단어를 완성하는 공원에서 약속을 생각하면 입술이 녹아내린다 평생 모아둔 라일락을 탕진한 늦봄처럼 이혜미 / 근린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사, 2016)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11.28 -
신해욱 / 전염병
신해욱 / 전염병 그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 했다. 꿈속에서 죽은 쥐가 지금 어디에서 썩고 있는지 아니. 나로부터 썩 물러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그는 나의 눈에 달라붙어 있었다. 끈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침이 가득 고인 입으로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독을 먹은 게 내가 아니라면 그런 게 아니라면 말로 할 수 없는 이런 슬픈 사연이란 무엇일까. 정녕. 나에게 있는 그 아니면 쥐. 열이 있는 그 아니면 쥐. 체온을 유지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신해욱 / 전염병 (신해욱, syzygy, 문학과지성사, 2014)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8.01 -
기혁 / 무연탄
기혁 / 무연탄 악몽을 꾸지 않아도 두터워지는 설태처럼 나날이 어두워지는 아랫목 수십 개의 눈으로 충혈된 연탄이 사람의 낯빛으로 식어간다 뭉칠수록 단단해지는 하드 밥*의 눈이 내리면 재로 변한 이목구비를 가진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온다 두 덩어리로 눕는다 뜨거움이란 가장 높은 온도에서 흰빛을 내는 것 눈사람의 냉가슴을 위태롭게 쌓아 올리고 또다시 두근거릴 순간을 고대하는 것 고대 지층의 흑심을 품고서야 겨울을 보낼 웃음을 가졌지만 입맞춤할 체온은 두 번씩 찾아오지 않는다 무심한 곁눈질에도 진창으로 화답하던 뒷골목의 나날들 젖은 눈을 뭉치던 아이가 운다 녹아내린 심장 위로 얼룩무늬 스웨터를 벗어 주고 갔다 기혁 / 무연탄 (기혁, 소피아 로렌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
2020.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