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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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 오늘
최현우 / 오늘 물을 붓고 자라는 일들을 지켜본다 대기에 비린 냄새 섞일 때 내가 잘라버린 너를 생각한다 이제 사라져도 좋을, 나도 떠나고 너도 떠난 우리의 지난 일들이 녹고 부풀 때 우리는 꿈결 속에서 장미보다 가시로 자라길 원한다 덜컥 걸린 눈물과 비명이 살인을 닮을 때 우리가 하는 일을 철 지난 노래라 하자 잊기 위해 두고 왔는데 두고 와서 잊을 수 없게 된, 거기서, 우리의 모든 창문을 타고 또다시 미끄러져내려올 때 그게 너와 나의 한때, 소나기라고 하자 그리하여 이곳이다 네가 너를 버린 실종의 곳간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잃어버리는 소음을 들으며 여전히 숨어 잠이 드는 최현우 / 오늘 (최현우,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문학동네, 2020) https://www.insta..
2020.12.05 -
최현우 / 발레리나
최현우 / 발레리나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 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밀고 잔다 이불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듯이 길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에 보니 당신의 맨발이 반짝거린다 간밤에 어딘가 걸어간 것 같은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맨발로 춤을 췄다고 한다 발롱!* 더 높게 발롱!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 당신이 자꾸만 가여워지고 있다 최현우 / 발레리나 * 발레의 점프 동작. (최현우,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문학동네, 2020) https://..
2020.03.22 -
최현우 / 천국
최현우 / 천국 하늘에서 하얀 섬광이 번쩍거렸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멍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보고 있었다 최현우 / 천국 (최현우,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문학동네,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