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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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이 / 아파트
박송이 / 아파트 닥치는 대로 혼자가 될 때 혼자 있는 것들과 눕고 싶을 때 누울수록 깊어지면서 우리는 그곳을 갯벌 빛이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가 단 한번이라도 서로의 속살이 된 적이 있을까 우리는 말놀음이나 할 줄 알지 빈 조개껍데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기르던 발톱을 버린 갯벌 밭에서 호주머니에 나란히 누워 속살이 열리기 전까지 바깥은 그저 문이다 박송이 / 아파트 (박송이, 조용한 심장, 파란,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8.30 -
나태주 / 내가 너를
나태주 /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며 내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나태주 / 내가 너를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1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4 -
임솔아 / 모래
임솔아 / 모래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니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
2020.03.01 -
송수권 / 혼자 먹는 밥
송수권 / 혼자 먹는 밥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뒤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송수권 / 혼자 먹는 밥 (송수권, 시골길 또는 술통, 종려나무, 2007)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9 -
이상국 / 상강(霜降)
이상국 / 상강(霜降) 나이 들어 혼자 사는 남자처럼 생각이 아궁이 같은 저녁 누구를 제대로 사랑한단 말도 못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기울어서 나는 자꾸 섶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국 / 상강(霜降) (이상국, 뿔을 적시며, 창비, 2012)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