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 상실의 시대
2020. 2. 26. 13:54ㆍ同僚愛/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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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 상실의 시대
너의 앙가슴이 너무 추워서
나는, 나도 모르는 외계어로 너를 애무한다
침대 위의 너와 나, 고양이들, 재떨이, 검은 브래지어
한 번 더 서로의 혀를 꼬며
우리의 낡은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
입술이 뱉는 밀어가 수북이 쌓이면
수증기를 통과하는 물고기처럼,
너의 분홍색 엉덩이가 흔들린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우리의 언어를 고민해 본다
좀 더 사적인 마음으로
칫솔질을 하는 네가 귀여워서
입가에 묻은 거품을 엄지로 닦아 준다
나의 성기가 왼쪽으로 휘고 있다
욕실 가득 거룩한 촛불들이 술렁인다
상상임신을 한 여자처럼 구역질이 났다
너는 내 등을 가만히 쓸어 주고
불빛들은 우리의 알몸을 희끗희끗 노출하고
나는 따갑게 다시 너를 안는다
우리는 미래를 조금씩 상실해 가며 사랑을 나눴다
사정이 끝나면, 나는
숲에 내다 버려진 개같이 바들바들 떨었다
암초처럼 가만히 있던 네가 다가와,
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나를 만진다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
태어나지도 않은 물거품이 되는 꿈을 꾼다
우리는 무지개가 될 것 같다
우리가 우리이기 전부터
나의 체모는 바르게 자라왔고,
그것은 우리의 미래보다 항구적이다
좀, 슬픈 일이다
김하늘 / 상실의 시대
(김하늘, 샴토마토, 파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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