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 냉동 새우
2020. 4. 30. 15:50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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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 냉동 새우
이 굽은 얼음덩어리를 녹이려고
물을 붓고 기다렸다
몸통은 녹아가도 굽은 허리는 펴지지 않았다
피곤,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물어지지 않은 피곤의 흔적이라는 헤아릴 수 없음도
녹은 새우를 어루만졌다
말랑말랑하구나, 네 몸은
이루어질 수 없는 평화 같은 미지근한 바다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갔다
꿈에서 돌아오듯 나는 시를 쓰는 것을 멈추었고
이제 시 아닌 다른 겹의 시간에게
마른 미역 봉지를 건네주었다
새우는 다시 얼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듯
저녁을 향하여 무심히 죽어 있었네
제 살던 곳에서 끌려나와 동유럽 겨울 눈 속에서
구부리고 맨땅에서 국을 떠먹던 난민처럼
내일 새벽 일찍 나가 눈길을 걸어 밥을 벌어야 하는 발처럼
허수경 / 냉동 새우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난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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