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1. 11:09ㆍ同僚愛
서효인 / 선배, 페이스북 좀 그만해요
빠른 육공인 그 또한
파란색을 좋아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여기저기 말 붙이기도 좋아했을 것이다 묻는 말에
답하는 것일 뿐이지만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을
것이고 사람들이 좋아했을
것이다 좋아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좋은 게 좋은 것이고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것이다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질식해 죽을 일도 없고 비틀어진 치열도
상관없지 이를테면 10월 31일이면 어떤 노래가
떠오른다며 서로를 추어올리는 낭만의 대가들, 때때로
광장의 혁명가
저돌적인 자본가
발기부전 환자
집권당의 당원
리버럴 중산층
현대프랑스철학은 알아도 페미니즘은 모르는 시민
평생 종편 뉴스는 안 보지만 가끔 포르노는 보는 사람
어느 동네든 맛집을 두루 아는 사람 내장비만인 사람
뭐든 극단적인 건 싫은 사람 산이 좋은 사람
등산 가서 셀피 찍는 사람 꽃이 좋은 사람
대리운전 기사가 한낮에도 오는지 안 오는지 알기
싫은 건 모르고 모르는 게 약이고 그래서 약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함을 좋아하는 사람
좋은 게 좋고 죽어도 좋아서 우리는 한잔했다
빠른 육공인 그도 페이스북에 글 좀 썼을 것 같다
미안하지만 희망에 대해 말하자면
죽은 사람은 계정을 새로 팔 수 없으며
나는 계정이 있고 살아 있는 한 뭐라도 좋아할 예정인데
선배님이 제 롤모델입니다,
빠른 육공이 시퍼렇게 웃는다
북한산 꼭대기에 그득 찬 미세먼지가
비뚤배뚤한 치아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질식사를 일으킨다
참,
좋았다
서효인 / 선배, 페이스북 좀 그만해요
(강성은 외, 어느 푸른 저녁, 문학과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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