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30. 13:35ㆍ同僚愛
송희지 / 난바(難波)
난바는 병원에 있었다. 수의사는 감탄했다. 약국에서 죽은 토끼 냄새가 났다. 멜빵바지 입은 꼬마가 엉엉 울고 있었다. 엄마가 닥치라고 했다. 안전하게 사랑하세요 초박형 콘돔 L사이즈. 아이의 내일을 책임지세요 스무 가지 야채 들어간 어린이 주스. 꼬마는 주스를 먹다가 토한 것이다. 모든 일이 처음이었던 캐셔는 손님들을 향해 외쳤다. 삼, 삼, 삼… 삼천 원입니까?
난바는 맥도날드에서 점심식사 했다.
난바는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쳤다. 배달원이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하나같이 먼 곳으로 가는 택배들입니다요. 상담원 김미영 씨가 어저께 아빠의 부고(訃告)를 들었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은 저번 달 어머니가 보셨던 산술점에서 기인했다고 했다. 미영 씨가 눈물을 훔쳤다. 삼천오백 원 결제했습니다. 영수증은 파쇄해드릴까요?
난바는 신촌역에서 2호선을 탔다. 이른 낮이었으므로
사람이 없었다.
난바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마셨다.
세 쌍의 커플들이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지우고 난 뒤에. 우린 어떻게 살지?
이곳의 무드는 완벽하지. 커피는 그만큼 구리고.
사실 나는 두 주일 동안이나 머리를 안 감아본 적이 있어.
아메리카노는 점층적으로 식는다. 작용(作用)이다.
난바는 길거리를 걸었다.
늙은 자전거족에 합류했다.
그중 두 명의 자전거는 훔친 것이었고
환경을 보호하세요 몸 건강에 유의하세요
미세먼지 농도 167
그린 시티 사업의 일환으로 배치된
그린-자전거를 타세요
난바는 엄숙한 뒷골목을 가로질렀다.
따-르-릉 따-르-릉.
난바는 복도식 아파트를 걸어 현관으로 진입했다. 아파트 단지 너머에서 애들의 소리가 들렸다. 잡아 봐. 잡아 봐. 누군가 잡혔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긴 복도 너머 방 안에서, 애정 넘치는 층간소음이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난바는 죽었다 안 죽었다 했다.
송희지 / 난바(難波)
(송희지, 공정한 시인의 사회 6월호, 편집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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