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8. 19:14ㆍ同僚愛/강성은
강성은 / 나의 셔틀콕
아버지와 나는 배드민턴을 쳤다 셔틀콕은 도무지 공 같지 않고 깃털들은 얇은 종이처럼 하늘거리며 천천히 날았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햇빛 때문에 찡그린 채로 손을 이마에 대고 지루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배드민턴 놀이는 셔틀콕의 비행은 슬로우모션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라켓을 높이 쳐든 아버지의 몸짓도 받으려는 나의 몸짓도 너무나 더디게 흘러갔다 나는 햇빛 사이로 비행하는 셔틀콕의 움직임을 반짝임을 시시각각 느끼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하얀 체육복을 입은 여자아이
공중에 한참 멈춰 있던 아버지의 라켓이 순식간에 내리치자 셔틀콕은 저편 숲 속으로 빠르게 휙 날아가버렸다 나는 촐랑거리는 강아지처럼 깡충껑충 뛰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숲 속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오래된 나무들이 깊은 침묵 속에 잠겨있었다 셔틀콕은, 희고 아름다운 깃털이 달린 나의 셔틀콕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나의 소중한 셔틀콕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나는 조금씩 더 깊은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루해 너는 언제 어른이 될까 엄마는 늘 내게 물었다 나도 모르죠 엄마는 언제 어른이 되었나요 지루해 너는 지루함을 모르는구나 너는 도무지 자라지가 않는구나 얘야 그건 셔틀콕이 아니야 그저 한 마리 작은 새란다 이제 저녁이 되었으니 집으로 날아간 게지
숲이 어둠으로 가득 찼을 때 셔틀콕을, 어쩌면 새일지도 모르는 그 셔틀콕을 정말로 찾을 수 없다고 여겨졌을 때 나는 그 숲을 빠져나왔다 배드민턴을 치던 아버지와 엄마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그런데 도대체 그곳은 어디일까 날마다 조금씩 사라져가는 더없이 고요한
강성은 / 나의 셔틀콕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同僚愛 > 강성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성은 「성탄전야」 (1) | 2022.01.13 |
---|---|
강성은 / Ghost (1) | 2020.07.31 |
강성은 / 기일(忌日) (1) | 2020.07.31 |
강성은 / 여름 한때 (1) | 2020.07.18 |
강성은 / 12월 (1) | 2020.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