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3. 10:37ㆍ同僚愛
박태일 / 생배노 몽골
1
참새를 발아래 기르던 버드나무 잘라져 보이질 않고
문 또한 남쪽으로 바꿔 낸 기숙사 복도 끝 304호
늦은 시각 구두를 신은 채 머리를 감는다
낡은 텔레비전은 모르는 채널 위를 오가며
어느 먼 데 소식을 양털 무더기인 양 날린다
창을 열고 묵은 방냄새를 내보낸다
앞길에 세워둔 차가 양 같다
오늘 하루 산으로 들로 다닌 뒤 잠자리에 드는 양
뒷보기유리를 깨뜨려 아양아양 우는 어린 놈도 보인다.
2
며칠 비에 넘치는 황톳물
쑥대 무성한 셀브 강 흘러간다
벅뜨항 산 비알에 희게 돌로 새겨놓았던
청기스항 얼굴도 흩어져내린다
내가 알았던 처녀 둘은 학교를 그만둔 뒤
멀리 호숫가 선교사로 떠났다
중앙우체국 담벼락 헌책방 주인 바씅은
흰머리에 허리가 무거워
눕혀둔 헌책처럼 앉아 존다
나는 『몽골에서 보낸 네 철』 속
그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 뒤 함께
여섯 해 앞선 들로 들어섰더 나온다
바이스태는 안녕히 가세요 줄이면 바카
박씨는 몽골 말로 선생님
됫박에 고봉 콩이 쏟아지듯 그가 웃는다
바카 박 박씨야 바카 박 박씨야
몽골 낮달은 흰 달걀 이를 지녔다.
3
안녕은 생배노 지는 해 보며
기숙사 창을 연다 생배노
등불은 저보다 큰 등갓 그림자를 쓰고
천장에 붙은 채 나와 함께 밖을 내다본다
여름 비 끝에 눈을 이고 선 벅뜨항 산
먼 들에서 올라왔을 듯싶은 구름이
소식을 나누는지 서로 어깨를 부딪는다
새로 칠한 아파트에서는
자두처럼 익은 등불이 하나둘
신문지를 구기듯
아이 부르는 엄마 소리 들린다.
박태일 / 생배노 몽골
(박태일,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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