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 / 끼니

2020. 7. 21. 14:00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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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 끼니

1

병실에 누운 채 곡기를 끊으신 아버지가

그날 아침엔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너무 반가워 나는 뛰어가

미음을 가져갔다

아버지는 아주 작은 소리로

그냥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아버지는 밥을 드셨다

그리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2

우리는 원래와 달리 난폭해진다

때로는 치사해진다

하찮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겨울,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한 노숙자가 자고 있던 동료를 흔들어 깨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먹어둬!

이게 마지막일지 모르잖아

 

 

 

고영민 / 끼니

(고영민, 사슴공원에서, 창비, 2012)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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