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2020. 11. 15. 10:37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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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를테면 공동묘지 어떤 무덤이나, 오단 서랍장

세 번째 수납 칸 되어, 혹은 비켜간 채널 되어

이제껏 비가 왔던 모든 날들을 수납한다

욱여넣을 문갑 한 칸 찾을 수 없다

당분간 엄마가 아침 드라마를 괜히 끊는다

햇볕 찾아오는 어느 날 가사까지

지어올 리 없다

오늘을 오늘처럼 사는 처세술서

한 권쯤 갈아 마셔야 가늘게 산다

마르지 않은 수많은 어제들 말리느라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없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제부터 당신은 모르는 사람

어제를 닮은 키 큰 플라타너스

마른 잎사귀를 한 걸음 밟는데

부스러기 섬들 다시 돋아나는데

펄펄 우는 폭우에 펼쳐질 나는

무지갯빛 우산, 아직 펑펑 젖은 무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사람은 오는데 사랑은 없고

 

 

 

조율 /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조율,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시인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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