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규 / 소행성

2020. 12. 2. 11:30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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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 소행성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의자만 뒤로 계속 물리면 하루종일 석양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너와 나는 이 별의 반대편에 집을 짓고 산다.

내가 밤이면 너는 낮이어서

내가 캄캄하면 너는 환해서

우리의 눈동자는 조금씩 희미해지거나 짙어졌다.

우리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적도까지 몇 발자국이면 걸어갈 수 있다.

금방 입었던 털외투를 다시 벗어 손에 걸고 적도를 지날 때

우리의 살갗은 급격히 뜨거워지고 또 금세 얼어붙는다.

우리는 녹아가는 얼음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나는 네게 하루에 하나씩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가 못 보고 지나친 유성에 대해

행성의 반대편에만 잠시 들렀다가 떠난 외계인들에 대해.

너는 거짓말하지 마, 라며 손사래를 친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너와 나 사이에

너에게 한없이 헤엄쳐갈 수 있는 바다가

간간이 파도가 높아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우리는 금세 등을 맞대고 있다가도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입술이 된다.

​지구의 둘레만큼 긴 칼로 사람을 찌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질까.

죄책감은 칼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네 꿈속의 유일한 등장인물은 나.

우리는 마주보며 서로의 지나간 죄에 밑줄을 긋는다.

신철규 / 소행성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2017)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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