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하 / 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2020. 12. 5. 17:10ㆍ同僚愛
728x90
이원하 / 나를 받아줄 품은 내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점심 먹을 시간이 왔고
내일모레 그가 와요
부탁할 건 없고
내일모레 그가 와요
실랑이도 함께 와요
수국의 성대를 잡고 꺾으면
수국이 울고
우는 수국으로
꽃병을 찌르면 그가 좋아해요
꽃병을 찌르다가 수국 대신
내가 울고 싶은데
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내일모레와 동시에 그가 왔고
준비한 수국을 꺼내려 하는데
그의 팔꿈치에 이미 수국이 펴 있어요
그는 살아요
매년 혼자서 잘 살아요
수국도 내가 참견 안 했으면
잘 살았을 거예요
혼자서 잘 사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내가 울게 되는 지점이에요
나도 나 없이 살아지죠
살아지지만
그럴 경우
교접하지 못하는 두 개의 안녕 때문에
발목에 호수가 생기는 게 문제죠
이원하 / 나를 받아줄 품은 내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2020)
'同僚愛'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혁 / 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1) | 2020.12.21 |
---|---|
김병언 / 조현병의 풍경 (1) | 2020.12.10 |
최현우 / 오늘 (1) | 2020.12.05 |
신철규 / 저녁 뉴스 (1) | 2020.12.02 |
신철규 / 소행성 (1) | 202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