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하 / 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2020. 12. 5. 17:10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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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나를 받아줄 품은 내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점심 먹을 시간이 왔고

내일모레 그가 와요

부탁할 건 없고

내일모레 그가 와요

실랑이도 함께 와요

수국의 성대를 잡고 꺾으면

수국이 울고

우는 수국으로

꽃병을 찌르면 그가 좋아해요

꽃병을 찌르다가 수국 대신

내가 울고 싶은데

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내일모레와 동시에 그가 왔고

준비한 수국을 꺼내려 하는데

그의 팔꿈치에 이미 수국이 펴 있어요

그는 살아요

매년 혼자서 잘 살아요

수국도 내가 참견 안 했으면

잘 살았을 거예요

혼자서 잘 사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내가 울게 되는 지점이에요

나도 나 없이 살아지죠

살아지지만

그럴 경우

교접하지 못하는 두 개의 안녕 때문에

발목에 호수가 생기는 게 문제죠

 

 

 

이원하 / 나를 받아줄 품은 내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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