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 그해 여름

2020. 12. 31. 10:38同僚愛/허연

728x90


허연 / 그해 여름

# 1

미국 드라마는 병실에서 섹스를 했다. 여배우는 꼭 창틀에서 한쪽 다리를 든다. 일종의 백기인 셈이다

# 2

한 달 내내 내리는 비에게 예를 갖춘다. 바다는 늘 익사한 자들만 받아들인다. 익사한 자들은 지느러미를 얻었다

# 3

부고가 도착했다. 따로 태어나서 따로 죽는다. 예도는 거짓이다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은 죽지 않은 자다. 죽음을 모르는 자다

# 4

철조망 앞에서 울고 있는 할머니에게 시절은 형벌이다. 강한 자만이 세월을 견디는 게 아니라 한 맺힌 자들도 시절을 견딘다

# 5

열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예뻤고 나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는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그날 밤 파이닝거의 돛단배를 타고 북회귀선으로 가는 꿈을 꿨다

# 6

세월은 내게 방울토마토를 먹여가며 밤새 협박을 했다. 장마 내내 구내염은 낫지를 않았다

 

 

 

허연 / 그해 여름

(허연, 오십 미터, 문학과지성사, 2016)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同僚愛 > 허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연 / Cold Case 2  (1) 2020.12.31
허연 / FILM 2  (1) 2020.12.31
허연 / 시월  (1) 2020.06.23
허연 / 삽화  (1) 2020.06.14
허연 / 저녁, 가슴 한쪽  (1) 202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