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윤수 「폭설」

2021. 1. 7. 09:16同僚愛

728x90

 

 

 

높은 궁지에서 분분히 하강하는 피난

눈이 내린다

오랜 나날 동안 그 앞을 지나다녔으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골목의 입구

시든 꽃나무 흙덩이를 안은 채 깨어진 화분들과

창백하게 뒹구는 연탄재 위에도 눈이 쌓인다

여기는 어디선가 본 멸망의 나라

사람들 모두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가고

건너편 횟집 수족관 속의 물고기들만

화석처럼 뻐끔뻐끔 이곳을 바라본다

두껍게 얼어붙는 시간의 계곡이

전 생애의 날개를 저어 떠나버린 것들의 뒷모습을 닮았다

하얀 침묵이 소리 없이

지상의 발목까지 내려 쌓이는 동안

그 골목으로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

폭설이 서서히 골목의 입구를 닫고 있었다

 

 

 

from Marco Allegretti

 

 

 


 

 

 

사윤수, 그리고, 라는 저녁 무렵, 시인동네, 2019

 

 

 

'同僚愛'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근석 「여름의 돌」  (1) 2021.01.16
이수명 「물류창고」  (1) 2021.01.16
이응준 「안개와 묘비명과」  (1) 2021.01.04
서효인 「진주」  (1) 2021.01.03
서효인 「부평」  (1) 2021.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