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윤수 「폭설」
2021. 1. 7. 09:16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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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궁지에서 분분히 하강하는 피난
눈이 내린다
오랜 나날 동안 그 앞을 지나다녔으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골목의 입구
시든 꽃나무 흙덩이를 안은 채 깨어진 화분들과
창백하게 뒹구는 연탄재 위에도 눈이 쌓인다
여기는 어디선가 본 멸망의 나라
사람들 모두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가고
건너편 횟집 수족관 속의 물고기들만
화석처럼 뻐끔뻐끔 이곳을 바라본다
두껍게 얼어붙는 시간의 계곡이
전 생애의 날개를 저어 떠나버린 것들의 뒷모습을 닮았다
하얀 침묵이 소리 없이
지상의 발목까지 내려 쌓이는 동안
그 골목으로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
폭설이 서서히 골목의 입구를 닫고 있었다
사윤수, 그리고, 라는 저녁 무렵, 시인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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