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5. 16:35ㆍ同僚愛/김건영
사거리에 서 있다가 사람이 사람을 실수로 죽이는 것을 보았다 피가 흘렀지만 구름과 바람이 같이 흘러 화창해졌다 신호등은 정해진 색깔로 점멸하고 있었다 눈물을 삼키다 가라앉는 사람도 보았다
은하수는 하늘에 떠 있다 밤하늘에도 물이 가득하다 이름을 부를 때면 입에 간격이 생긴다 선분 같은 걸 공책에 그리고 있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네 번째 이름을 스스로 지어 보면서 그 물을 다 보고서도 우리는 물을 마시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넷이 모여 하나가 된다니 이상합니다 집이라는 것이 생길 것 같다 공포에 질린 바둑알처럼 사람들은 희거나 검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안전하다고 합니다 넘치는 것이 있습니까 안전하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근다
계절의 담장을 주인 없는 고양이가 걸어서 통과한다 어려지거나 늙어 가면서 무늬를 갈아입고서 골목은 여전합니다 집을 둘러싸고 있다 그 속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방은 나를 먹으며 나를 견디고 있다 포위라는 말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벌레와 함께하는 잠이 있다 새까만 벌레들이 내 머릿속을 누를 때 인간도 외골격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영영 문을 열어 두고서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나를 미워하는 것은 좋았다 내가 마음 없이 눌러 죽인 기억들을 생각했다 벌레의 안쪽은 부드럽고 따듯하겠지 그것들은 밉지도 않았는데 잊고 말았다 계절은 끝나도 계절이라 한다 잠,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내 몸속 망각의 계절이다
김건영, 파이, 파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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