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이혜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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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카오스모스
이혜미 / 카오스모스 건기의 끝자락에서 목마른 손톱이 서걱거렸다 열두 개의 주관적인 매듭으로 아침을 엮고 동그란 표정의 소년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서정적으로 월경일만을 기다렸다 그늘이 한 뼘씩 위태롭게 쌓여갔고 암순응보다 어려운 것은 완벽한 손나팔을 만들어 저 멀리 날개를 터는 새들을 부르는 일 나무딸기가 침묵하는 대신 민소매 소녀들의 입속이 더 붉어졌다 가여운 소년들 동산을 잃어버린 소녀들은 구름을 찢어 신고 걸음을 아껴 걸었으나 서로가 쓴 손가락 권총을 맞고 줄지어 쓰러져갔다 번식에 대한 묘사는 모두 봉인되었다 바람개비만이 남아 폭풍을 다급히 의역하는 시간 무너진 동산에서 도돌이표들이 일제히 창궐하기 시작했다 이혜미 / 카오스모스 (이혜미, 보라의 바깥, 창비, 2011) ht..
2020.07.01 -
이혜미 / 투어(鬪魚)
이혜미 / 투어(鬪魚) 빛나는 가시를 세우고 너에게 갈게 보고 듣는 것이 죄악이어서 무엇도 유예하지 못하고 부서져 완전해진 무늬가 되어 헤엄칠 때, 우리가 가진 비늘이 일제히 진동한다 지느러미를 펼치니 너와 나의 그믐 어쩌면 이렇게 단단하고 빛나는 것을 몸 안에 담가두었니 뼈, 거품 속에서 떠오른 얼굴, 그 얼굴은 심장에서 가장 먼 곳에 있어 네가 머물던 자리에 다른 비참이 들어선다 서로를 흉내내다가 서로에게 흉(凶)이 되는 순간. 늑골을 숨기고 촉수를 오래 어루만지면 우리는 두 개의 날카로운 비늘, 아름다운 모서리가 남겨졌다 아직은 목젖을 붉게 적시며 구체적인 오후를 꿈꾸고, 잃어버린 아가미를 찾아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우리의 기도는 한곳만을 고집스레 방향하는 일이니, 깊..
2020.02.29